생각보다 단순한 이유로 여행지를 고를 때가 있다. 광활한 풍경 사진 한 장에 반해서, 친한 친구의 '여행 가자'는 제안에. 우리가 신혼여행지를 정할 때도 비슷했다. 

‘코알라 보러 갈까?’ ‘그래!’

호주에만 있는 동물이 보고 싶어 고민 없이 시드니행을 택했다. 평소 인스타그램으로 귀여운 강아지는 기본이고 온갖 새, 다람쥐, 캥거루 등 동물 영상을 즐겨 보는 우리에게 어쩌면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일주일은 시드니, 나머지 한 주는 브리즈번에 머물기로 했다. 브리즈번을 택한 이유는 조금 황당하게 들릴 수도 있다. 도시 이름이 예뻐서다. 산들바람을 뜻하는 ‘breeze’와 발음이 비슷한데, 받침이 없는 부드러운 소리에서 여유로운 도시일 거라 확신했다.

주변에서는 유럽 같은 ‘멜버른’, 산호초 군락인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와 가까운 ‘케언스’ 등을 추천했지만 한 귀로 흘려듣고 바로 항공편을 확정했다. 더 이상 선택지를 늘리고 싶지 않았다. 신혼집 채우랴 스튜디오 촬영 준비하랴 이미 선택지를 펼치고 좁히기를 반복했던 터라 조금 지친 것도 한몫했다. 결혼 준비 엑셀 시트에 체크리스트만 50행을 훌쩍 넘긴 마당에 신혼여행 준비는 ‘할 일’ 중 하나였으니 최대한 선택지를 줄이는 쪽이 편했다. 

출국하기 두 달 전에 부랴부랴 숙소 정보를 탐색했다. 명색이 허니문이니 호텔에서 며칠 묵기로 했지만 1박에 30만 원을 훌쩍 넘어 여행 내내 호텔에서만 지낼 순 없었다. 호텔보다 저렴한 에어비앤비도 찾아봤는데, K-암호 같은 한국인의 후기가 도움이 되었다.

• 이용 후기 "봐퀴붤례 나왔어요!"
• 호스트의 번역된 답변 "당신의 ‘봐퀴붤례’라는 단어를 이해할 수 없어요."

한국어가 영어로 제대로 번역되지 않도록 일부러 어법에 맞지 않게 쓴 후기를 찾을 때마다 웃음이 나왔다. 바퀴벌레가 출몰했거나 '더럽다'는 후기가 나오면 가차 없이 후보군에서 탈락시켰다. 휴. 마침내 2주 동안 머물 다섯 곳의 숙소를 정했다. 

이제 어딜 가야 할지만 살펴보면 된다. MBTI 상으로 대문자 J의 계획형 인간이라 촘촘하게 일정표를 짜는 편인데, 이미 많은 에너지를 소진했으니, 유튜브에서 여행 브이로그만 가볍게 보기로 타협했다. 테라스에서 브런치를 즐기는 사람들, 자유롭게 파도를 타는 서퍼가 어찌나 여유로워 보이던지!

알고리즘이 이끄는 대로 브이로그를 20편 넘게 봤으려나. 신기하게도 다른 영상을 보는데 같은 장소가 자주 나왔다. 시드니 3대 커피 맛집, 플레이리스트 영상 배경 화면에 나올 법한 전망의 언덕. 심지어 현지 마트에서 사 먹는 그릭요거트 브랜드까지 똑같았다. 

'왜 다 똑같은 곳을 가는 거지?' 의아했다. 정해진 코스를 복사, 붙여넣기한 다음, 한두 개 정도 다른 장소를 추가하는 게 안전한 방법인가 싶었다. ‘여기 안 가면 후회해요’, ‘이 메뉴 비추천/추천’처럼 이대로 해야 할 것 같은 메시지도 반복됐다. 정보 습득 차원에서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지만 너무 많은 선택지와 정보가 넘쳐나 혼란스러웠다. 하고 싶은 걸 찾아보는 게 아니라 '해야만 하는 걸' 추리는 쪽에 가까웠다. 왜 많은 신혼부부가 휴양지로 떠나는지, 허니문 패키지를 택하는지 알 것도 같았다.

"그만 봐. 모르고 가야 재밌는 거야." 머리를 쥐어뜯는 나를 보며 레오는 내 노트북을 살포시 접었다. (그는 P형 인간이자 나보다 근심 걱정이 없는 편이다) 결혼식이라는 큰 산을 하나 넘고 가는 것만으로도 홀가분하고 즐거울 거라고. 6년 만에 같이 떠나는 해외여행이니 더할 나위 없을 거라는 말로 나를 안심시켰다.

맞다. 애초에 완벽한 계획은 없을뿐더러 정보는 참고 사항일뿐 따라야 하는 정답이 아니다. 즉흥적으로 들어간 카페에서 인생 커피를 만날 수도 있고, 잘못 찾아간 길에서 어디서도 보지 못한 훌륭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여행의 묘미는 우연에서 온다고 하지 않던가.

돌이켜보면 유명한 랜드마크보다 계획에 없던 코스, 우연히 만난 사람과 나눈 대화가 더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저 주어진 시간을 함께 충분히 즐기는 일이 최선이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앞으로 펼쳐질 우리의 시드니와 브리즈번은 어떤 모습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