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색이 신혼여행인데 휴양지 같은 곳을 중간에 가보고 싶었다. 마냥 수영하고 먹고 자고 노는 일정도 필요하다 생각했다. 한창 여행을 준비하며 KBS 여행 프로그램인 <걸어서 세계 속으로>를 봤다.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Great Barrier Reef) 산호 군락지의 최남단, 레이디 엘리엇(Lady Elliot Island)이란 산호섬이 나왔다. 분명 TV에는 소개되었지만 인터넷에 검색해 보면 한국인 후기가 거의 없었다. 구글에서 검색하면 외국인의 긍정적인 후기가 몇 개 보였다. 그러다 인스타그램을 검색해 만타 가오리와 바다거북 사진을 보고 결심했다. 이곳에 가야겠다고.

다수가 고르지 않은 옵션을 선택할 때 두 가지 마음이 공존한다. ‘우리는 남들과 달라!’같은 이상한 우월감, 다른 하나는 ‘남들이 고르지 않은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이다.

평소에는 식당이나 물건을 고를 때 리뷰가 적으면 빠르게 걸렀다. 리뷰가 많은 것 중에서도 체험단 냄새가 덜 나는 진실한 리뷰가 있는지 살핀 다음 선택하는 편이었다. 늘 해왔던 의사결정 방식과 다르게 이번에는 우리의 직감을 믿어보기로 했다. 끝내주는 바닷속 생명체의 사진을 본 이상 리뷰가 별로 없다는 이유로 이곳에 가지 않는다면 후회할 것 같았다. 리뷰 개수가 적다고 경험의 질까지 낮을 거라 지레 판단하지 않기로 했다. 사람들이 많이 안 해본 만큼, 희소하고 특별할 거라고 믿기로 했다.

바다거북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뿐만 아니라 이 섬에 친환경 리조트가 딱 하나 있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솔직히 섬에 리조트를 만들었다는 것 자체부터 친환경적이지는 않다만 이곳에서 친환경적인 요소를 발견하게 되면 마음의 죄책감은 덜 수 있을 듯했다.

레이디 엘리엇의 역사를 찾아보니 대략 이랬다. 과거 이곳은 식물의 비료로 쓰이던 구아노(바닷새의 부설물)를 구하러 온 광부들에 의해 황폐해졌다. 무분별한 채굴과 벌목으로 자연이 망가졌지만 1960년 후반에 조종사 돈 애덤스가 그레이 베리어 리프에서 가져온 토종 식물을 심는 등 노력을 기울여 자연이 많이 회복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달달달달. 경비행기가 시끄럽게 소리를 냈다. 열 명 남짓의 여행객이 서로 인사를 나누고 한 명씩 조심히 탑승했다. 동양인이라곤 나와 레오 딱 두 명뿐이었다. 다들 영어로 안부를 묻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눴기에 소외된 느낌도 받았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모두 상기된 표정으로 안전벨트를 매고 창밖을 쳐다보았다.

무사히 이륙해 15분 정도 날더니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끝없이 바다가 펼쳐졌다. 초호화 별장 같은 집들이 바닷가 근처에 붙어있기도 했고, 숲 중간중간 사막 언덕도 보였다. 해안 모랫길을 따라 오프로드 드라이브를 하는 지프차도 여럿 보았다. ‘아 역시 호주구나’ 다시금 느끼던 순간이었다. 도심에서는 볼 수 없는 생경한 자연 풍경 앞에서는 할 말을 잃었다. 이렇게까지 자연을 즐길 수 있구나, 자연과 어우러져 사는 삶이란 얼마나 자유로우며 평화로울까, 동시에 얼마나 스릴 있고 무서울까 싶었다. 프로펠러 돌아가는 소리가 규칙적이다 못해 안정적인 나머지, 풍경에 감탄하다 말고 백색소음을 배경 삼아 꾸벅꾸벅 졸고 말았다.

그러다 조종사의 ‘다 와 간다’는 안내 방송에 잠이 번쩍 깼다. 와!!! 에메랄 빛, 거의 투명에 가까운 바다가 둥그렇게 섬을 둘러싸며 반짝였다. 레이디 엘리엇 섬이 보였다.

섬 가운데를 직선으로 관통하는 활주로에 경비행기는 모래 먼지를 내며 착륙했다. 꾀액꾀액 괴상한 울음소리를 내며 생전 처음 보는 새들이 하늘 위를 날고 있었다. 새의 생김새도 낯설고 크기도 제각각이라 무섭기까지 했는데, 새들의 세상에 발을 딛은 우리는 초대 받지 않은 불청객 같았다.

리조트 홈페이지에서 본 그대로 최소한의 시설만 갖춘 단출한 객실이 바닷가 주변에 이어져 있었다. 객실에는 에어컨이 없고 천장에 달린 선풍기 하나만 돌아갔다. 전력은 태양광 발전 시설에서 자체적으로 생산했다. 섬 주변 해역에서 낚시를 하거나 무엇이든 채취하는 게 금지되어 있고, 산호초를 보호하기 위해 정해진 구역에서만 스노클링을 할 수 있었다. 호주 에코투어리즘 최고 수준의 인증을 받았다니 마음이 놓였다. 매일 해양 액티비티 뿐만 아니라 친환경적 시설에 관한 설명 세션, 산호초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 등 다양한 환경 중심의 프로그램도 갖추고 있었다.

여기서는 핸드폰도 터지지 않았다. 와이파이를 유료로 사용할 수 있지만 식당과 그 주변 구역에서만 쓸 수 있었고, 신호가 약하니 무용지물이었다. 거의 섬에 고립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우리는 그 고립감을 즐겼다.

어떠한 연락이나 광고 메시지로부터 자유로웠다. 도심에서 여행 중일 때에는 하루 일정이 끝나고 침대에 널브러져 밀린 SNS 피드를 엄지 지문이 닳도록 넘겼던 것 같은데, 이곳에는 그럴 필요도 없었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전혀 SNS에 올라온 소식이 궁금하지 않았다. 우리만의 시간을 보내기도 바빴다. 눈앞에 펼쳐진 자연과 함께하는 연결감, 이 생생한 경험을 충분히 만끽하고 싶었다. 

간단하게 리조트 시설에 대한 안내를 듣고, 부랴부랴 바다로 스노클링을 하러 떠났다. 우리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이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일사불란하게 장비를 챙겼다. 액티비티 숍에서 오리발과 수트를 대여하고 선크림을 꼼꼼히 챙겨 발랐다. 바다로 뛰어들기 전에 작은 수영장에서 간단하게 스노클링 호흡법을 익혔다. 신혼여행 오기 전에 거북이를 보겠다는 일념하에 프리다이빙 체험 클래스에 참여했건만 실전에 돌입하니 괜히 긴장되었다. 가뜩이나 레오는 물 공포증이 있었다. 수영장 물과는 다르게 짜고 차갑고 파도 치는 바닷물에 몸도 얼어버릴까봐 최대한 몸을 풀려 애썼다.

자, 바다로 들어가 볼까. 한참을 가도 땅에 발이 닿을 정도로 수심이 얕았다. 발을 디딜 순 없었다. 산호들이 바로 부서지기 때문이다. 뭍 가까이에서부터 몸을 물에 띄우고 천천히 발을 차며 나아갔다. 물속을 관찰했다. 수족관에서나 볼 법한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이 산호초 위를 헤엄쳤다. 팔뚝만 한 크기로 은색 매끈한 피부를 뽐내는 이름 모를 물고기, 대왕 조개, 파란 불가사리도 봤다.

이렇게 다양한 생명체가 살고 있다니! 끝을 알 수 없는 바다에는 우리가 모르는 생명체들이 얼마나 많을까? 아득한 그 세계가 더 알고 싶어졌다. 스노클링으로나마 이 세계를 조금이라도 느껴볼 수 있는 게 얼마나 행운인가. 인간 역시 그저 지상의 작은 존재 중 하나인 것 같았다.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왼편에서 무언가 펄럭이고 있었다. 바다거북이다! 곧바로 고프로(방수가 되는 소형 카메라)를 켜고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거북이는 양쪽 날개와 다리를 휘저으며 유영했다. 산호 사이사이 무언가를 뜯어먹었다. 거북이가 헤엄치는 동안 작은 물고기가 모여들기도 했다. 거북이가 놀라지 않게, 거북이의 수영을 방해하지 않게 천천히 따라가거나 물장구를 멈추고 가만히 둥둥 떠 바라보았다. 사진으로만 보다가 나와 함께 같은 공간에서 수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았다. 신비하고 신기하고, 이렇게 나타나줘서, 살아줘서 고맙기까지 했다.

1시간 정도 스노클링을 즐긴 후 소금기에 절인 머리와 몸을 깨끗이 씻어냈다. 스노클링은 하는 동안엔 무아지경으로 빠져들었지만, 끝나고 상태를 원상복귀 시키는 게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배까지 고팠다. 바다를 보며 테라스에 앉아 한국에서 챙겨온 작은 컵라면을 하나씩 해치웠다. 레오와 바다거북 이야기를 신나게 하며 영상이 잘 찍혔나 보려고 고프로 전원을 켰다. 어? 이상하다. 

‘SD카드 오류’라는 글자가 깜빡였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