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바다거북을 담은 영상이 다 날아가 버렸다. 카메라에 물이 들어간 것도 아니고, 떨어뜨린 적도 없는데. 정말 좌절감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영상을 찍다 보면 아무 이유 없이 가끔 뻑날 때가 있다는 레오의 말에 결국 SD카드를 포맷했다. 다음 날 거북이가 다시 나타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물놀이의 여파로 우리는 저녁 9시가 되어 곯아떨어졌다. 덕분에 다음 날 새벽 5시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잠을 푹 잔 것도 있지만 시끄러워서 깬 것도 있다. 숙소 바로 앞에 '흰모자 노디'란 새들이 거의 열매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아니 둥지를 틀고 수십 마리가 앉아 있었는데 고약한 새 소리가 도통 시끄러운 게 아니었다. 

나무 앞을 지나가면 사람이 가까이 왔을 때 앞쪽에 앉아있던 새가 꽥!하고 울었다. 이어서 뒤에 있는 새들이 연달아 꽥!하고 신호를 보내면 삽시간에 꽥꽥꽥꽥 엄청나게 소리가 퍼졌다. 아무래도 조심하라는 경고이자 방어 태세인 듯했다. 머리맡에 일회용 귀마개가 비치된 이유를 이해할 수 있던 밤이었다. 방문을 닫고 자기엔 너무 덥고 습해서 방충망만 남겨 놓고 커튼만 친 다음 자느라 새 소리를 피해 갈 방법도 없었다.

“온아 얼른 나와봐!” 레오는 아직 잠이 덜 깬 나를 다급히 불렀다. 뭔가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잠옷 차림에 모자만 푹 눌러쓰고 선글라스를 낀 채 바다 쪽으로 걸어 나갔다. 아침을 일찍 맞이한 다른 사람들도 몇몇 있었다. 모래밭에서 바닷물까지 두 줄로 바퀴 자국 같은 것이 나 있었다. 거북이가 육지에 알을 낳고 바다에 돌아간 흔적이라고 리조트 직원이 알려주었다. 땅으로 올라오는 길 하나, 나머지는 바다로 다시 돌아간 흔적, 그래서 두 줄이 보였던 것이다.

장하다 장해! 거북이가 남긴 트랙은 정말 아름다웠다. 두 팔로 파닥거리며 모래를 밀어내고 힘겹게 밀어냈을 거북이를 생각하면 뭉클하면서도 애틋하기까지 했다. 트랙의 가운데는 꼬리가 모래에 쓸리며 만들어낸 것 같은 자국이었다. 마치 우산 끝이 그려낸 자국과 비슷했다. 잔잔하고 투명한 바닷물, 그리고 숨을 고르는 엄마 거북의 모습은 숭고했다.

거북이는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돌아와서 알을 낳는다. 거북이의 사투는 장장 4시간 정도 걸린단다. 뭍으로 올라와 거북이는 알을 땅 깊숙이 낳고 새가 파먹지 못하게 모래를 덮은 다음 다시 바다로 돌아간다. 정말로 바다까지 이어진 길 끝에 거북이 등딱지 일부가 수면 위로 올라와 있었다. 거북이는 중간중간 고개를 들어올렸다. 숨을 내쉬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거북이 성별에 관한 기사가 떠올랐다. 기후 변화로 인해 거북이의 성비 불균형이 심각하다는 내용이었다. 기온이 높을수록 바다거북의 알이 암컷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평균적으로 거북이가 산란할 때 주변 온도가 27.7도 이하면 수컷, 31도 이상이면 암컷으로 태어난다.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 수역에서도 푸른 바다거북이 99%가 암컷으로 태어났다는 보고도 있다. 기온뿐만 아니라 바다에 있는 플라스틱 등에서 나온 오염물질도 성별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가 봤던 거북이에게서 태어난 새끼 거북이들은 과연 어떤 성별을 가지게 될까. 이번에도 암컷이 많으려나 자연스레 걱정으로 이어졌다.

거북이를 본 행운이 이어지길 바라며 우리는 아침을 먹은 다음 스노클링을 떠났다. 이번엔 보트를 타고 나가 수심이 더 깊은 곳에서 물고기를 보기로 했다. 액티비티 담당자는 물 속으로 들어가 어떤 생명체를 발견하면 물 위로 올라와 사람들에게 알려주었다.

“여기 거북이가 있어요!” “여기 니모가 있어요!” 담당자의 손끝이 향하는 쪽으로 열심히 헤엄쳐갔다. 진짜 바닷물에 나부끼는 부드러운 미역처럼 산호초가 흔들리고 사이사이 선명한 줄무늬의 말동가리가 그 안으로 쏙 숨어버렸다. 세상에! 고개를 돌려보니 수면 가까이에서 무려 거북이 세 마리가 헤엄치고 있었다.

잽싸게 카메라를 켜 영상 촬영을 시작했다. 서로 장난을 치는 것도 같았다. 몸 크기는 아침에 본 거북이보다 훨씬 작았다. 너무 깊은 곳까지 거북이가 가버려서 아쉽지만 따라갈 수 없었다. 거북이뿐만 아니라 작고 반짝이는 물고기 떼도 만났는데, 그들 사이에 끼어 내가 한 마리 물고기가 된 것 같기도 했다.

뭍에 올라와 카메라를 확인하니 정상적으로 동영상이 저장되었다. 휴. 언제 거북이와 수영을 해보겠냐며 우리는 쉬는 시간 내내 거북이 영상을 보고 또 봤다. 몇 번 물놀이를 반복하고 중간중간 식사를 하고 휴식을 취하다 보면 하루가 금방 가버렸다. 

리조트 단지 내 통행로에는 가로등이 없다. 깜깜해도 랜턴 하나에 의지해 길로 다녀야 한다. 바닷새와 뭍으로 올라오는 거북이, 바다로 나가는 새끼 거북이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다. 새끼 거북은 알에서 부화해 자연스럽게 바다로 기어나간다. 지형이 더 낮은 쪽이 바다일 거라고, 달빛이나 별빛이 반짝이는 그곳이 바다일거라고 본능적으로 아는 모양이다. 우리가 거북이의 산란기에 레이디 엘리엇을 찾아갔으니 부화한 아기 거북을 볼 수는 없었다. 방 안에도 거북이를 배려한 문구가 벽에 하나 붙어있던 게 참 귀엽고 소중했다. 저녁에는 테라스에 불을 켜지 말 것, 커튼을 쳐서 빛이 새어나가지 않게 할 것. 

저녁을 먹고 캄캄한 하늘 아래 모래사장에 털썩 앉았다. 아주 깜깜해서 정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우리 말고도 다른 사람들도 별을 보러 나온 것 같았다. 쏟아질 듯 하늘을 하얗게 수놓은 별, 그리고 너무나 환한 달을 계속해서 올려보았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행여나 거북이가 우리가 앉아 있는 쪽으로 올라오지 않을까 싶어 귀를 기울였다. 물론 거북이는 보지 못했다.

생명체의 일상과 출산까지 목격하면 한번 본 이상 그 대상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수족관에서 거북이를 볼 때와 느낌이 다르다.  억지로 만들어낸 인공적인 환경이 아닌 본래 그들의 땅에서 뛰놀고 힘껏 살아내는 풍경을 볼 때만 느낄 수 있는 벅찬 감동이 있다. 동시에 그들의 터전을 파괴하는 인간 중 하나로서 너무나 미안하고 죄책감이 든다. 폐그물에 목이 끼거나 해파리인 줄 알고 비닐을 먹는 거북이의 소식을 접할 땐 속상함만 남는다. 거북이는 죄가 없는데 말이다.

이런 모습을 사진이 아니라 실제로 마주해야 그때부터 심각성을 느끼고 자연을 생각하는 마음이 더 들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호주 사람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천혜의 자연환경 덕에 여러 동물과 공존하며 살아가는 만큼, 동물을 보호하고 환경을 생각하는 일이 우리보다 조금 더 현실적이고 당연한 일로 여겨지겠구나 싶다.

나 역시 일상생활에서 대단한 실천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는 환경운동가도 더더욱 아니다. 그렇지만 점점 더 환경은 동물이 살기 힘들어지는 곳이 될 것이고, 생태계가 무너지면 인간 역시 살아남기 힘든 건 매한가지일 거라고 본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런 일에 공포감을 쉽게 느끼는 편이다. 그러다가 영화 투모로우처럼 모든 게 얼어붙어 버리거나, 홍수로 사람들이 다 떠내려가면 어쩌나 하는 무시무시한 상상을 자주 떠올린다.

매번 발만 동동 구르며 걱정만 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그저 내가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실천하고, 투표나 서명운동에 참여해 작은 목소리라도 보태는 수밖에. '거북이가 위험해요!’,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어요!; 하고 관련된 소식을 주변 사람들에게 한 명이라도 더 알고 움직일 수 있게 열심히 퍼나르는 수밖에. 너무나 보잘것 없는 실천임을 안다. 소시민적인 실천력이 부끄럽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바다거북을 직접 두 눈으로 본 이상 그 전과 마음이 다른 것은 분명하다. 그들은 분명 우리와 같은 지구라는 곳에 살고 있고, 똑같이 살 권리를 보장받아야 하는 존재인, 소중한 생명체라고. 그들이 사라지지 않아야 우리도 산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