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만을 기다렸다. 드디어 코알라를 본다니! 들뜬 마음을 품고 페더데일 와일드 라이프 공원(이하 페더데일)으로 향했다. 이곳에서는 코알라를 비롯해 호주 동물 260여 종이 살고 있었다. 시드니 도심에서 차로 50분 정도 떨어진 곳에 공원이 있기에, 대중교통을 여러 번 탈 바에야 시간과 체력을 아낄 겸 패키지 투어로 편하게 다녀오기로 했다.

약속 장소에 모이는 시간은 아침 8시. 오픈 시간에 맞춰 입장하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일찍 가야 동물들이 활동적이고, 사람들로 붐비기 전에 가는 게 좋다고 익히 들었다. (많은 업체가 제목에 ‘오픈런’이란 단어를 넣어 투어 상품을 소개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1시간. 빠른 걸음으로 입장했다. “와!!! 어떡해!!! 너무 귀여워~” 란 말 말고는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나무에 안정적으로 엉덩이를 끼고 앉은 코알라가 눈앞에 나타났다.

보송보송한 회색 털, 초코볼 같은 동그란 눈, 옅은 분홍색이 섞인 귀. 모든 게 귀여웠다. 1시간 중 40분을 코알라만 넋 놓고 봤다. 표정은 어찌나 나른하던지. 근심 걱정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나도 코알라처럼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자는 코알라 반, 깨어있는 코알라가 반 정도 있었다. 술에 취한 아저씨처럼 고개를 푹 숙였거나 유칼립투스 잎과 잎 사이로 몸을 숨겨 잠을 청한 코알라도 보았다. 코알라는 에너지를 비축하기 위해 24시간 중에 평균 20시간을 잔다. 유일하게 먹는 유칼립투스 잎에 영양소가 적을뿐더러, 소화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유칼립투스는 700여 종이 넘는데, 코알라가 먹는 것은 약 50종에 불과하다. 코에 잎을 갖다 대고 냄새를 맡은 다음 먹을지 말지를 결정할 정도로 후각이 발달했다. 코알라는 검은 발톱으로 나뭇가지를 잡고 잎을 입에 넣더니 질겅질겅 씹었다. 눈은 반쯤 감은 채 표정은 아주 만족스럽다는 듯 여유로웠다. 아무 생각 없이 느긋한 코알라를 보기만 해도 마음이 녹아내렸다. 동화 속 한 장면에 들어가 있는 듯 신비롭고 평화로웠다.

아기 코알라를 업은 어미 코알라도 인상 깊었다. 이제 내려와도 될 것 같은 몸집의 새끼를 등에 업고 한번도 떨어뜨리지 않은 채 나무 위를 오갔다. 캥거루만 아기 주머니가 있는 줄 알았더니 코알라에게도 있었다. 코알라는 곰과가 아닌 배에 주머니가 있는 ‘유대류’에 포함된다. 아기 코알라는 어미의 주머니에서 6개월간 머물다 이후에는 어미의 등에 업힌 상태로 6개월 정도 지낸다고 한다.

외나무다리에서 새끼를 업은 어미 코알라와 또 다른 어린 코알라가 만났다. 그들은 어떻게 나무를 건널까? 싸우려나? 아니면 한 마리가 포기하고 뒤로 돌아서 가려나? 예상 밖이었다. 어미는 원래 가던 나무 위를 유유히 걸어 통과했고, 반대편에서 오던 코알라는 나무 밑으로 매달려서 건너갔다. 그 자그마한 몸으로 어떻게 나무 타기를 익혔을까? 살아가는 방법을 스스로 배워낸 코알라가 기특했다. 나무에 매달린 어린 코알라의 포동포동한 엉덩이를 팡팡 토닥이고 싶었다! 

코알라를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게 있다. 2019년에 호주에서 6개월간 이어진 최악의 산불이다. 산불로 코알라가 6만 마리 이상 다치거나 죽었고, 한반도 면적보다 더 넓은 땅이 불에 탔다. 산불의 원인은 이례적인 고온과 가뭄, 즉 기후변화였다. 

수억 마리의 동물이 죽었는데, 그 중에서도 코알라의 피해가 유독 심했다. 움직임이 느리고 이동을 싫어하는 습성, 기름기가 많은 유칼립투스 잎을 먹기에 코알라가 다른 동물보다 불에 취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불 재난 이후 호주 정부는 코알라를 멸종위기 보호종으로 분류했다. 

인스타그램에서 사진을 몇 장 보았을 때 너무 마음이 아팠다. 까맣게 탄 숲 가운데 털을 그을린 코알라가 슬픈 눈을 하고 있거나, 소방관이 코알라를 구조해 물을 먹이는 사진이었다. 

코알라는 영원해야 한다. 멸종되어 화석이나 사진으로만 보고 싶지는 않다. 사랑스러운 생명체를 내 눈으로 본 이상 대하는 마음은 전과 같지 않다. ‘귀엽다~’에서 그치면 안 된다는 걸 안다. 

귀여운 생명체를 오래 볼 수 있으려면 우린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직접적으로 큰 산불을 끄거나, 해수의 온도를 낮추거나, 탄소 배출량을 극적으로 줄이는 등의 거대한 일을 개인이 해결할 순 없다. 환경이 더 이상 나빠지지 않아야 동물들의 서식지가 보호받고, 그들의 먹거리도 사라지지 않는다. 너무 먼 얘기 같거나 환경 캠페인 슬로건에 가까운 말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한 번이라도 귀여운 동물과 교감해 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불필요한 소비 하지 않기, 분리수거 제대로 하기, 동물권 보호 운동에 관심 가지고 목소리 내기 등 미약하지만 실천해 보는 거다. 작은 행동일지라도 하나둘 모인다면 변화를 끌어낼 수 있고, 더 많은 동물을 조금이라도 지킬 수 있다. 지금 당장 겨울을 나기 위해 날아온 철새 오리를 다음 해에도 볼 수 있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