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서는 아침에 알람 없이도 눈이 번쩍 떠진다. 하루를 더 길게 보내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나 보다. 6시쯤 일어나 커튼을 열고 창밖 풍경을 감상한다. 오늘의 날씨를 확인한 뒤, 숙소에서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기로 한다.

우리는 주로 시리얼을 우유에 말아 먹었다. 마트에서 산 블루베리도 찬물에 씻은 다음 한 알씩 집어 먹었다. 기쁘게도 한국에서 먹는 것보다 가격은 반값인데 알맹이 크기는 2배쯤 되었다. 치울 껍질이나 씨가 없어서 과일을 챙겨 먹고 싶을 때 블루베리는 훌륭한 선택지였다.

체력이 떨어진 것 같은 날에는 한국에서 챙겨온 컵밥으로 때웠다. 즉석밥을 전자레인지에 데우고 전기포트에 물을 끓여 용기에 붓기만 하면 미역국밥 한 그릇이 뚝딱 나왔다. 뜨끈하고 맛도 순해 속에 부담이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숙소를 나오기만 하면 언제 아침을 먹었냐는 듯 서로에게 물었다.

“이제 뭐 먹을까?”

“우리가 방금 먹은 건 뭐야?”

“에피타이저라 치자.”

“좋아!”

너무 많이 먹어서 내장이 늘어난 걸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브런치 맛집을 지도 앱에서 검색하고 있었다. 아침을 두 번씩 먹은 셈이다. 외식을 할 때마다 생각보다 돈이 많이 나가서 첫 끼는 숙소에서 해결하는 쪽을 택했지만, ‘이럴 때 아니면 또 언제 돈 걱정 없이 사 먹겠냐’며 합리화했다. 성대하게 먹는 게 여행자의 특권이자 이곳을 기억하는 방법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우리는 주로 빵에 계란 요리와 채소를 곁들인 메뉴를 주문했다. 시드니에서의 첫 아침은 ‘플라워앤스톤(Flour and stone)’에서 맞이했다. 말린 소시지인 살라미와 아보카도 스프레드 등으로 채운 잠봉뵈르 샌드위치를 먹었다. 머스타드로 상큼한 맛까지 더해 느끼하지 않고 살라미의 짭짤한 맛과 갓 구운 바게트의 고소함이 잘 어울렸다. 목이 막힐 듯한 타이밍에 따뜻한 아메리카노, 아니 롱블랙을 한 모금 마시면 ‘우리가 바라던 브런치’라며 입을 모았다. (호주에서는 아메리카노를 롱블랙이라 부른다)

매니저는 맛이 괜찮냐 물었다. “모든 게 완벽해요! 저희가 시드니에서 먹는 첫 아침이었답니다!” 엄지를 치켜세우며 화답했다. 매니저는 환하게 웃으며 이 도시를 마음껏 즐기라고, 내일 또 만나자고 인사를 건넸다. 매니저의 기분 좋은 한마디에 하루 여정이 잘 풀릴 것 같은 용기도 덤으로 얻었다.

여러 메뉴 중에 기억에 남는 건 단연 에그 베네딕트였다. 호주에서 맞이한 열세 번의 아침 중 세 번이나 먹을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여행지에서는 가급적 다양한 음식을 맛보고 싶지만, 아침만큼은 생소한 메뉴에 도전하기보다 대략 아는 맛으로 골랐다. 먹음직스러운 비주얼은 기본이고 웬만하면 어딜 가나 맛있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 게다가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이 골고루 있으니 균형 잡힌 식사도 가능하리라 봤다.

에그 베네딕트는 빵 위에 햄이나 베이컨, 수란을 얹고 그 위에 버터와 달걀노른자, 레몬즙으로 만든 홀란다이즈 소스를 뿌린 요리다. 세 번 모두 다른 식당에서 먹었는데 소스나 토핑, 달걀의 익힘 정도가 달라 비교하는 재미가 있었다.

가장 맛있었던 곳은 시드니가 아닌 브리즈번의 더 크로프트(The Croft)였다. 유독 이곳에만 사람이 붐벼 홀린 듯이 들어갔다. 크로프트의 에그 베네딕트는 특별했다. 잉글리시 머핀이 아닌 사워도우에 토핑이 올라갔고, 데친 시금치와 함께 허브 향신료인 타라곤과 밀크 크럼블이 잔뜩 뿌려져 있었다. 향긋하면서도 씹는 맛이 살아있었다. 수란을 반으로 가르니 노른자가 주르륵 흐르며 소스와 자연스럽게 섞였다. 천천히 한 조각씩 먹으며 음미했다. 모든 재료의 맛과 향이 무엇하나 튀지 않고 조화롭게 어울렸다.

구글 리뷰 기준으로 5점 만점에 평점이 4.4점인 카페에서 먹었던 에그 베네딕트는 머스타드의 톡 쏘는 맛이 강해서 아쉬웠는데, 이에 비하면 크로프트의 음식은 완벽에 가까웠다. 이 메뉴에 호감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입맛이 까다로운 편도 아니지만, 똑같은 메뉴를 여러 스타일로 비교해 보니 ‘호(好)’가 생겼다. 무엇이 내게 좋거나 좋지 않은지는 여러 번 경험해 봐야 알 수 있구나. 딱히 관심 없던 대상도 들여다보고 뜯어보면 ‘호’로 이어지며, 마음의 문이 열린다는 것도 새롭게 경험했다.

정녕 30분 전에 숙소에서 끼니를 때우고 나온 사람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우리는 그릇을 싹싹 비웠다. 제대로 챙겨 먹고 나니 걸음도 가벼워지고 2만 보는 거뜬히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왠지 모를 자신감도 생겼다. 우리는 여기에 다시 오고 싶은지 점수를 매기며 진지하게 대화를 이어 나갔다. ‘한국에 돌아가면 아침을 든든하게 챙기자’, ‘이 메뉴는 직접 만들어보자’며 결연하게 다짐했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우리의 아침은 달라졌을까? 솔직히 고백하자면 별다를 게 없었다. 하루 이틀은 신경 좀 쓰나 싶더니 원래 먹던 대로 돌아왔다. 종종 깎아 먹은 사과 빼고는 시리얼과 우유가 전부였다. 그토록 여유로운 호주의 아침은 어디로 갔을까. 잠을 더 자겠다는 이유로, 빨리 준비하고 출근한다는 이유로, 귀찮다는 변명까지 더해져 식사를 챙기는 데 소홀했다. 변명이라면 변명이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긴 했다.

매일 거하게 차릴 수는 없는 법. 대신 주말에는 여행자의 조식처럼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평일보다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이틀만큼은 느긋하게 누려보자고. 호주의 분위기를 재현해 보자고. 든든하게 식사한 덕분에 하루 일정을 거뜬히 소화할 수 있었듯이, 제대로 된 한 끼로 시작한다면 하루가 더 활기차고 멋지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볼에 달걀을 휘휘 풀어 프라이팬에 붓는다. 오믈렛을 만든다. 동네 빵집에서 사둔 호밀빵을 토스터에 굽는다. 감자수프를 데운다. 양배추와 파프리카를 썰어 샐러드를 준비한다. 드립백 하나를 컵에 걸치고 데운 물을 천천히 붓는다. 커피 향이 부드럽게 퍼진다. 유튜브로 재즈 플레이리스트를 틀어 둔다. 됐다. 이만하면 호주의 아침이 부럽지 않다.

• 응모 기간: 11/29(금)~12/1(일) 단 3일!
• 응모 방법: 이 링크에 내용을 남겨주세요.
• 당첨자 선물: 
  1) 호주의 차 브랜드 T2의 티백 5개
  2) 프로폴리스 치약 1개 (식사 후 개운한 입까지 책임질게요)
• 당첨자 안내:
  선물 수령에 관해 개별적으로 연락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