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은 저절로 눈이 떠졌다. 마음이 들떠 잠을 쉽게 이루지 못했지만 몸은 가뿐했다. 옆에 곤히 자는 온이 보였다. '호주에 온과 함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때마다 미소가 흘러나왔다. 잠에 취한 온이 깨지 않게 슬그머니 침대를 빠져나왔다. 혼자 갈 곳이 있었다. 버킷 리스트 중 하나를 이루기 위해서였다. 조용히 나갈 준비를 빠르게 끝내고 걸음을 서둘렀다.  

 15분 정도 걸으니 큼지막한 ‘Skydive’ 글씨와 하늘에서 환하게 웃으며 떨어지는 사람이 그려진 버스가 보였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나는 스카이다이빙을 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버스 옆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덩치 큰 기사 아저씨가 참가자 명단을 확인하며 한 사람씩 인사하고 있었다. 나도 다가가 ‘굿모닝’을 외치며 이름을 확인하고 버스에 올랐다. 

 버스가 출발하니 기사는 울런공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울런공(Wollongong)은 해변에서 스카이다이빙 하기 좋은 장소로 알려져 있다고 했다. 조금 떨렸다. 내가 스카이다이빙을 하러 간다니 믿기지 않았다. 앞자리에 앉은 외국인 커플은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우리 정말 스카이다이빙 하러 가는 게 맞아?’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지금쯤 온은 일어났으려나 궁금해하며 창밖의 풍경을 감상했다.  

 한국에 있을 때 스카이다이빙을 함께 해보지 않겠냐는 물음에 온은 이렇게 답했다. “죽었다 깨어나도 못해. 오빠의 버킷리스트니까 혼자 다녀와. 근데 나 과부 되긴 싫어...” 그 말을 들으니 조금 겁이 났다. 하늘에서 뛰어 내릴 모습을 상상하면 설레다가도, 낯선 타지에서 떨어져 각자 시간을 보낼 우리가 괜찮을지 걱정되었다. 신혼여행 중에 따로 시간을 보내는 부부가 몇이나 있을까 싶기도 했다. 만에 하나 불의의 사고로 온을 혼자 남겨둘까 봐 겁도 났다.

15,000 피트, 그러니까 4.57km 높이의 상공에서 뛰어내리는 일은 독일 옥토버페스트에서 맥주를 마셔보는 버킷 리스트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체험 후기를 몇 번이나 찾아보며 안전한지 확인했다. 며칠 동안 고민한 끝에 결심했다.

“스카이다이빙을 꼭 해보고 싶어.”
“좋아. 난 그동안 시내 돌아다니고 있을게. 너무 재밌겠다!” 혼자 여행하는 게 두렵지도 않나? 생각보다 온은 쉽게 말했다. 그래도 정말 괜찮은지 재차 물어봤지만 온은 똑같이 대답했다. “오빠가 하고 싶은 일인데 뭘. 반나절 혼자 돌아다니는 건 아무 일도 아니야.” 온은 나를 위해 투어 상품을 알아보고 직접 예약까지 해줬다. 

 이른 아침이라 사람들은 차에서 잠들었다. 한 시간 정도 지나자 기사는 모두를 깨웠다. 그리고 ‘왼쪽을 보라’는 기사의 말에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조금 흐린 하늘과 바다 근처 아기자기한 마을이 나타났다. 구름이 걷히길 바랐다. 동시에 ‘내가 뛰어내리면 하늘에서 볼 바다구나’ 싶어 설렜다. 이렇게 두근거리는 게 얼마 만인지! 버스에서 흘러나오는 쿠바풍의 노래는 우리를 위한 축제의 음악처럼 들렸다.

조금 더 달린 끝에 스카이다이빙 센터에 도착했다. 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있었고, 작은 건물로 들어가 사전 설문지를 작성했다. 몸이 불편한 곳은 없는지, 24시간 이내에 스쿠버다이빙을 한 이력은 없는지 개인의 건강 상태를 확인했다. 항목을 읽고 체크하던 중 옆을 돌아보니 무전기 소리가 들렸다. 하늘에서 사람들이 하나둘 내려오기 시작했다. 열 명의 숙련된 다이버가 땅에 차례대로 앉았다. 다들 소리를 지르며 신나는 표정으로 착륙했다.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나도 곧 저렇게 하늘을 내려오겠구나’ 실감했다.

다행히 날이 맑아졌다. 파란 점프수트를 입고 보호장구를 착용한 후 30분 정도 안전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나는 파트너 다이버 우디(Woody)를 만났다. 키가 컸으며, 멋지게 수염을 기른 남자였다. 우디는 내 보호장구를 다시 한번 꽉 조여주며 어디서 왔냐 물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손흥민을 좋아한다며 양손의 엄지와 검지로 세레모니 포즈를 취해 긴장을 풀어주었다. 잔디밭 한쪽으로 날 부르더니, 손바닥만 한 작은 카메라로 촬영하며 대뜸 인터뷰하기 시작했다. 

👨우디: 조금 있으면 저 하늘에서 뛰어내릴 건데 기분이 어때?
🤵레오: 흥분되면서도 긴장돼. 하지만 나는 꿈을 이룰 거야!
👨우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어?
🤵레오: 한국말로 해도 돼?
👨우디: 물론이지!
🤵레오: 온아, 너무 떨리지만 잘 뛰어내리고 살아서 돌아갈게!

그 순간에도 온에게 한마디를 남기려는 나 자신이 웃기면서도 마음에 들었다. 소감을 짧게 영상으로 남기고 우리는 경비행기가 있는 작은 공항으로 이동했다. 도착한 다음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경비행기에 차례로 올라탔다. 10명 남짓의 사람들이 자신의 파트너와 다닥다닥 붙어 앉았다. 문이 닫혔다. 그리고 비행기는 빠르게 하늘로 향했다. 경비행기를 처음 탔지만 무섭기보다 즐거웠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바다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나왔다. 저 파란 하늘 위를 내가 날 수 있다는 사실에 들떠 ‘생각보다 스카이다이빙 체질인가?’ 싶었다.

“준비됐어? 우리는 세 번째로 뛰어내릴 거야.” 뒤에 붙어 앉은 우디가 큰 소리로 말했다. 일정 고도에 올라가자 경비행기는 투박한 엔진 소리로 가득했고, 플라스틱 문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흔들거렸다. 문 옆에 앉아 있던 검은 헬멧을 눌러쓴 남자가 익숙하게 문을 올렸다. ‘드르륵!’ 문이 열리더니 바람이 더 거세게 들어왔다. 막상 비행기 문이 열리자 긴장됐다. 그 순간 온이 나에게 했던 한 마디가 떠올랐다. “오빠, 나 과부 되기 싫어!”

생각을 이어 나갈 여유도 없이 나보다 먼저 순서를 기다리던 두 사람이 하늘 밑으로 사라졌고, 내 차례가 되었다. 엉덩이를 한 쪽씩 들썩이며 문 앞에 앉았다. 30분 전 배웠던 자세를 기억해 냈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오금을 접은 다음, 등을 활처럼 휘어 우디에게 몸을 맡겼다. 나는 어느새 호주의 파란 하늘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롯데월드 놀이기구 중 하나인 자이로드롭의 꼭대기에서 순식간에 떨어지는 느낌과 비슷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디의 신호에 따라 팔을 양옆으로 펼치니 거센 바람이 얼굴, 팔, 다리, 몸통 전부를 휘감았다. 떨어지는 느낌은 사라지고 온몸으로 바람을 맞이했다. 그제야 광활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신기했다. 나는 하늘에, 그것도 구름보다 위에 있었다. 

와~~~!!!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우디의 손목에 있는 카메라를 바라보며 엄지를 들어 올리고, 하트도 만들었다. 몇 초 지나지 않아 구름 속으로 진입했다. 앞이 안 보였다. 뿌옇고 아득한 느낌이었다. 누군가 분무기를 뿌린 것처럼 얼굴과 손이 촉촉해졌다. 손으로 구름을 잡아 보려 했지만 잡히는 건 없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순간적으로 여기가 어디인지 지금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 두려워졌다. 그 두려움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해소되었다.

구름층을 벗어나자 넓은 바다가 나타났다. 풍경이 너무 황홀해서 ‘Amazing!’을 연달아 외쳤다. 우디는 손목에 있는 고도계를 살짝 보더니 낙하산을 펼쳤다. 순간 몸이 붕 뜨며 하늘로 다시 올라가는 것 같았다. 양쪽 어깨의 장비를 꽉 잡고 낙하산의 공기저항을 온몸으로 느꼈다. 힘의 평형이 잡히자 우리는 말 그대로 하늘을 날고 있었다. 우디가 이끄는 방향에 따라 빙글빙글 돌기도 하고, 직접 조종해보며 자유로움을 즐겼다.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두려움, 해방감, 경이로움, 안도감, 즐거움이 뒤섞여 소용돌이쳤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소리를 지르고 웃었다.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 지난 후 땅으로 내려왔다. 기분 좋은 이 여운은 오래갈 것 같았다. 하늘에서 찍었던 영상과 사진을 몇 번씩 보며 시드니로 복귀했다. 버스가 내리는 곳에 온이 환하게 웃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혼자 여행은 잘 했을까? 나를 걱정하면서 기다렸을까? 내리자마자 온을 꼭 껴안으며 고맙다고 말했다. 사진과 영상을 보여주며 무용담을 말하듯 신나게 이야기했다. 온은 그런 나를 뿌듯하게 바라봤다.

돌아보면, 온은 내가 꿈이라고 말하는 일이나 그 어떤 도전이든 진심으로 지지해 주었다. 7년 전 함께 동유럽 여행을 떠났을 때도 그랬다. 세계적인 맥주 축제인 독일 ‘옥토버페스트’에 가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가보고 싶다’는 한마디에 온은 고민도 하지 않고 뮌헨을 여정에 추가했다.

온이 아니었으면 꿈속의 꿈으로, 그저 말뿐인 꿈으로 남아 묻어두었을 것이 뻔했다. 덕분에 또 하나 하고 싶은 것을 이루었다. 그래서 '고맙다'는 말이 제일 먼저 나왔다. 우리의 결혼식에서 주례를 봐주신 신부님의 마지막 말씀이 떠올랐다.

“두 분이 서로를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넓혀준 사람,
나 스스로를 믿게 해주는 사람.”